대만은 일본어, 중국어(국어), 대만어가 충돌하며 언어 정책과 민족 정체성이 얽혔다. 세대 간 언어 경험을 통해 대만 사회의 정체성 변화를 살펴본다.
서론
대만의 근현대사는 곧 언어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본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어가 강제되었고, 국민당 정부 이주 이후에는 중국어(국어)가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대만어(민남어), 객가어 등 지역 언어는 여전히 일상 속에서 사용되며, 세대마다 서로 다른 언어 경험을 축적했다. 이러한 언어 정책의 충돌은 곧 민족 정체성과 정치적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일본 식민지 시기의 언어 정책 (1895~1945)
일본어 보급과 강제
일본은 대만을 식민지로 편입하면서 학교와 행정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다. ‘일본어 보급 운동’을 통해 대만 사회를 동화시키려 했으며, 대만어와 한자는 점차 배제되었다.
세대 간 경험
- 1세대: 일본어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일본어가 생활 언어가 된 층
- 2세대: 전통적 대만어와 일본어를 혼용하며 살아간 층
→ 해방 후 이들은 일본어 세대라 불리며, 이후 국어 정책과 충돌했다.

국민당 정부의 국어 정책 (1945 이후)
중국어(국어) 강제화
1945년 해방 후 국민당은 대만을 접수하며 **중국어(보통화)**를 ‘국어’로 지정했다. 일본어와 대만어 사용은 공적 공간에서 억압되었고, 학교 교육과 방송은 철저히 중국어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언어 금지와 사회 갈등
- ‘국어 운동’을 통해 일본어 세대와 대만어 화자들이 중국어를 배우도록 강제했다.
- 학교에서는 대만어 사용 시 벌금을 부과하거나 공개적인 체벌이 이루어졌다.
- 이는 대만 사람들에게 언어=정체성 상실의 강요로 다가왔다.
대만어의 생존과 세대 간 언어 경험
일상 속 대만어
억압에도 불구하고 대만어(민남어)와 객가어는 가정과 지역 공동체에서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나 공식적 지위는 낮았고, 젊은 세대일수록 중국어 중심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세대 간 언어 격차
- 일본어 세대: 일본어에 익숙, 해방 후 국어 습득에 어려움
- 대만어 세대: 집에서는 대만어, 공공 영역에서는 중국어를 사용
- 신세대: 중국어를 모국어로 사용, 대만어는 소통 능력이 약화됨
이러한 경험의 차이는 곧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의 차이로 이어졌다.
민주화 이후 언어 정책의 변화
다언어 정책 도입
1987년 계엄령 해제 이후, 대만 사회는 민주화를 맞으며 언어 다양성이 재평가되었다. 대만어 방송이 허용되고, 학교 교육에서도 대만어·객가어·원주민어 과목이 개설되었다.
언어와 정체성 정치
오늘날 대만에서는 언어가 곧 정체성의 표지가 된다.
- 중국어 중심 세대는 ‘중화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는 경향
- 대만어와 원주민어 세대는 ‘대만인’ 정체성을 강하게 의식
→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정치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었다.
결론
대만의 언어 정책은 일본어 → 중국어(국어) → 다언어 체제로 변해왔다. 세대마다 서로 다른 언어 경험을 갖게 되었고, 이는 대만 사회의 정치적·민족적 정체성과 직결되었다. 오늘날 대만은 언어 다양성을 존중하며, 언어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질문에 답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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