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식민지 경성, 두 세계가 부딪힌 도시

리버의역사 2025. 7. 27. 11:36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회와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갈등과 교류

1920~30년대 경성(현 서울)은 두 세계가 겹쳐 살아 숨 쉬는 도시였다. 한편에는 일본인 관료, 기업인, 군인, 그리고 가족들로 이뤄진 식민지 권력자들의 사회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억압받는 조선인,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키던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이 있었다.

1930년대 경성(서울) 거리.

 

일본인 사회—식민 지배의 일상과 특권

한반도에 정착한 일본인 사회는 191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했다. 1930년대엔 경성 인구의 약 15%가 일본인이었고, 평양, 부산, 신의주 등 각지에도 일본인 거주지가 따로 조성됐다.
경성 중심가엔 일본인 전용 학교, 신사(神社), 백화점, 우체국, 전차, 병원 등 최신 시설이 들어섰다.
이들은 조선인보다 더 좋은 주거지, 급여, 치안 서비스를 누리며, 일본과 동일한 민법, 상법, 학교 교육을 적용받았다.
경성의 명동, 남대문로, 종로 등지는 일종의 ‘작은 일본’이었다.

 

조선인 사회—차별과 억압, 그리고 저항의 삶

조선인들은 도시 변두리나 하층민 주거지에 밀집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일본인 중심의 차별이 만연했고, 조선인은 각종 고급 일자리나 교육, 주거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민족 학교, 야학, 서점, 신문, 교회 등 자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여기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지식인, 문인, 예술가가 배출됐다.

 

갈등의 현장—검문, 폭력, 그리고 ‘일상적 충돌’

일상에서는 사소한 언쟁에서부터 심각한 갈등까지 빈번했다.

  • 거리 검문, 불심검문, 구타와 체포
  •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의 학교 폭력
  • 상점·노동시장·교통에서의 차별, 혐오 사건
    경성의 술집, 극장, 시장에서도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알력은 끊임없었다.

 

의외의 교류와 협력—예술, 학문, 노동 현장에서의 만남

그러나 모든 것이 갈등과 적대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경성엔 다양한 민족이 뒤섞였고, 일본인 중에서도 진보적 지식인, 불교계 인사, 평화주의자들은 조선인과의 교류를 꾀했다.

  • 일본의 좌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여성운동가들이 조선인 동지와 연대해 노동운동, 출판운동, 여성 해방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에서는 일본인 교수와 조선인 학생들이 학문적 교류를 나누었고, 문학계에서도 번역, 공동 출판, 시·소설 교류가 있었다.
  • 일제의 억압에 저항하는 ‘국제적 연대’도 있었다. 3.1운동, 6.10만세운동 등에서 일본 내 양심적 인사들이 조선인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본인 변호사, 기자가 조선인 정치범을 옹호하거나, 박열·윤동주 등 조선인 청년과 우정을 맺기도 했다.

 

도시의 풍경—긴장과 혼재

경성 시내의 찻집, 서점, 극장, 신문사, 심지어 교도소 안에서도 두 사회의 접점이 있었다.

  • 조선인 지식인은 일본 신문을 읽고, 일본인도 조선의 시와 소설에 감명을 받았다.
  • 극장에서는 같은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관객석이 분리되거나 사소한 시비가 충돌로 번지기도 했다.

 

독립운동의 현장, 일본인 사회의 모순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인 사회 한가운데서 비밀결사, 인쇄소, 서점, 야학교 등을 운영하며 활동했다.
때로는 일본인 경관·관료와의 밀고, 위장 취업, 정보전이 펼쳐졌고,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깊은 불신과 동시에 예기치 않은 협력도 있었다.

 

오늘의 교훈

일제강점기 경성 등 한반도 도시의 풍경은, 단순한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이 아니라,
대립·충돌·차별과 더불어 복잡한 인간적 교류, 상호 영향, 국제적 연대의 현장이기도 했다.
오늘날 한일 관계도, 이런 복잡한 역사적 뿌리 위에 놓여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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