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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목소리, 되살아나는 이름

북해도의 아이누족과 일본화(일본同化) 정책의 그림자일본 최북단, 광활한 평야와 빙설이 어우러진 섬—홋카이도(北海道). 이곳엔 오래전부터 ‘일본인’이 아닌, ‘아이누(Ainu)’라는 또 다른 주인이 살고 있었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아이누는 수천 년 동안 홋카이도와 사할린, 쿠릴 열도의 대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 신앙, 문화를 꽃피워왔다. 아이누족—바다와 숲의 민족아이누는 언어적, 인류학적으로도 일본 주류인 야마토민족(大和民族)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집단이다. 아이누어는 일본어와도, 유라시아 다른 언어와도 계통이 다르다.이들은 사냥, 어업, 채집, 소규모 농경에 의존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 곰신(イヨマンテ), 불의 신, 숲과 바다의 영혼을 모시는 ‘..

카테고리 없음 2025.07.26

변방의 주인이 바꾼 동아시아의 지도

요·금·서하 소수민족 왕조와 고려, 송, 원의 복잡한 권력 구도동아시아의 중세사는 ‘중원(中原)의 한족 왕조가 중심’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로 10~13세기, 동아시아를 이끌었던 주역들은 오히려 변방의 소수민족 왕조들이었다. 그 대표가 바로 **요(契丹), 금(女眞), 서하(西夏)**다. 이들 왕조의 부상은 고려, 송, 원 등 전통 강국의 운명을 뒤흔들며 동아시아의 지도를 완전히 새롭게 그렸다. 1. 요(契丹) – 유목의 제국이 중원을 지배하다10세기 초, 만주와 몽골 초원을 무대로 하던 거친 유목민족 ‘거란(契丹)’이 한족의 혼란을 틈타 요(遼) 왕국을 세운다. 요나라는 만주, 몽골, 중국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한족 송(宋) 왕조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했다.이 시기 송은 군..

History 2025.07.26

국경을 넘어 평화를 잇다

조선 통신사와 일본 에도 막부의 문화 교류와 그 유산오늘날 한·일 관계는 역사와 현실의 파고를 넘나들지만, 과거에는 양국 사이에 평화와 문화를 잇는 ‘대사절단’이 수차례 오가며 진귀한 교류의 시대가 있었다. 이 주인공이 바로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다.통신사란 문자 그대로 “소식을 통한다”는 의미. 하지만 실제 그 역할은 외교·평화 사절, 문화 전파자, 지식 교류의 중개인이었다. 왜 통신사가 등장했을까?16세기 말, 임진왜란(1592~1598)이라는 비극 이후 조선과 일본은 국교가 단절됐다. 그러나 에도 막부가 안정되고 일본이 대외 무역과 외교를 재개하며, 두 나라 사이에 외교 관계가 복원된다. 그 상징적 사건이 바로 ‘조선 통신사’의 파견이다.1607년을 시작으로 1811년까지 약 200년간, 공식적으..

History 2025.07.25

바다 위 작은 왕국, 동아시아를 잇다

류큐왕국과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 오키나와오키나와라 하면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 일본 최남단의 남국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과거 수백 년 동안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의 중심지이자, 독립된 왕국 ‘류큐왕국(琉球王国)’의 땅이었다.이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중국, 일본, 조선, 대만을 잇는 무역의 교차로가 되었을까? 류큐왕국의 탄생과 성장류큐왕국은 15세기 초, 오키나와를 비롯한 주변 섬들이 통일되며 시작됐다. ‘쇼하시(尚巴志)’ 왕이 중산·북산·남산 등 세 왕국을 통합하고 슈리(首里)에 왕국을 세우면서 류큐왕국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류큐는 지리적으로 동중국해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고, 중국·일본·조선·대만·동남아를 잇는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해상 무역왕국, 류큐의 황금기15세기..

History 2025.07.25

에도시대의 창, 나가사키

데지마를 통해 흐른 동서양의 만남과 작은 국제도시의 삶오늘날 일본의 서쪽 끝, 규슈 나가사키. 이곳은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일본이 ‘쇄국(鎖国)’이라는 두터운 벽을 친 시절에도 유일하게 세계와 소통하던 창(窓)이었다. 나가사키는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서양, 그리고 일본 내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살아 숨 쉬던 국제무역항이었다.그 중심에는 조그만 인공섬—데지마(出島)가 있었다. 왜 일본은 문을 닫았는가? 그리고 왜 나가사키였는가?에도 막부는 1630년대, 기독교 포교와 외세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쇄국 정책을 단행한다. 전국의 항구가 봉쇄되고, 외국과의 공식 교류는 나가사키로 한정됐다. 나가사키는 지리적으로 대륙과 가깝고, 일찍부터 중국·포르투갈 상인들이 드나들던 무역의 중심지였다.이곳에서만..

History 2025.07.25

조선의 실학, 북경을 걷다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의 연행과 지식의 국경을 넘은 이야기조선 후기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전통 유학의 권위가 흔들리고, 사회·경제적 현실은 새로운 돌파구를 요구했다. 바로 이 시기, “실학(實學)”이라는 새로운 지식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실학은 단순히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문제 해결과 사회 개혁을 꿈꾼 조선 지성인들의 사상운동이었다. 청나라, ‘적국’이자 ‘배움의 대상’조선 사회에 청나라는 복잡한 대상이었다. 명분상으로는 명나라를 섬기고 청을 오랑캐(胡)로 여겼으나, 현실적으로는 거대한 청나라가 동아시아의 질서를 주도하고 있었다. 한편 청은 경제적·과학적·문화적으로 새로운 활기를 보여주고 있었고, 조선의 개방적 사상가들은 “배움”의 관점에서 청나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연행(燕行..

카테고리 없음 2025.07.25

명나라의 마지막 불꽃, 대만에서 피어나다- 정성공과 동녕왕국, 그리고 한·중·서양이 교차한 격동의 섬

혼돈의 중국, 그리고 한 줄기 희망17세기 중엽, 중국 대륙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오랜 세월 중원을 지배하던 명나라는 만주에서 일어난 청나라(후금)에 의해 무너지고, 대륙은 피바람과 혼란 속에 휩싸인다.이 대혼란의 시대, 명나라에 충성을 맹세한 수많은 유민(流民)들이 조국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한 인물—정성공(鄭成功, 쿠싱가 Koxinga)—은 중국 역사에서 ‘마지막 충신’으로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해상왕국의 탄생, 정씨 가문의 등장정성공은 원래 푸젠성 출신이지만, 그의 아버지 정지룡(鄭芝龍)은 해적에서 거상, 나중에는 명나라 수군 장군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정성공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한중일 해역을 넘나드는 명실상부한 국제인이었다. 명나라..

History 2025.07.25

“침묵의 섬”에서 울려 퍼진 절규

대만의 백색테러 시대와 그 그림자많은 이들이 오늘날 대만을 민주와 자유, 활기찬 시민사회로 떠올린다. 그러나 70여 년 전, 이 섬에는 극한의 두려움과 침묵이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다.‘백색테러(白色恐怖, White Terror)’—이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만을 지배했던 국민당 정부의 정치적 숙청, 공포정치, 그리고 그 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혼돈의 시대, 국민당의 이주와 권력 독점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될 때, 대만인들은 오랜 고통의 시대가 끝났다고 믿었다. 그러나 곧이어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국민정부)이 쫓겨 대만으로 옮겨오면서, 새로운 시련이 시작되었다.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국공내전(국민당-공산당)에서 패한 장제스와 국민당 정권은 1949년..

History 2025.07.25

대만 원주민의 역사와 현재

잊혀진 섬의 주인에서, 다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대만에는 대만인만 산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대만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뒤섞인 섬이다. 대만의 역사는 한족 이주자나 일본, 중국과의 정치적 역동성만큼이나, 오랜 세월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원주민(原住民, Indigenous Peoples, 타이완어로는 “아타야알”)’들의 이야기로도 풍성하다. 한족 이전, ‘섬의 주인’들이 있었던 대만한족(漢族)이 대만에 대거 이주해 오기 전, 대만에는 다양한 원주민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파완(Paiwan), 아미(Amis), 타로코(Taroko), 아타야알(Atayal), 루카이(Rukai), 부눈(Bunun) 등, 공식적으로만 16개의 원주민 부족이 현재 대만 정부에 의해 ..

History 2025.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