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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거상, 하카타 상인

일본-중국-조선 삼국을 잇다오늘날 후쿠오카(福岡)의 중심이자, 규슈의 관문 도시로 알려진 하카타(博多).그러나 이 도시는 중세에서 에도시대까지, 동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한 상인 네트워크의 심장이었다.하카타 상인들은 일본, 중국, 조선을 잇는 바다의 교역로를 개척하며, 동아시아 경제·문화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하카타—규슈 해안의 국제도시하카타는 일본 서부, 규슈 북부에 위치한 천연항으로, 고대부터 대륙과 일본 열도를 잇는 관문이었다.백제, 신라, 당나라, 송나라, 고려 등과의 무역 창구였고, 몽골 침입(원군의 일본 원정) 때도 군사·물자 공급지였다.특히 가마쿠라무로마치센고쿠~에도시대에 이르기까지 하카타는 ‘국제 무역 도시’의 명성을 이어갔다.하카타 상인—‘다이나믹’한 교역의 선구자하카타 상인들은 단순한 ..

History 2025.07.29

잊혀지지 않는 상처

중일전쟁 시기 ‘위안부’ 피해 여성, 한국·중국·대만의 기억과 현실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으로 남는다. 하지만 전쟁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에는 ‘말할 수 없는 패자’의 상처가 깊이 새겨져 있다.1937년 중일전쟁(이듬해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본군은 점령지 곳곳에 ‘군 위안소(慰安所)’를 설치하고, 한국·중국·대만 등지의 수십만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이 피해자들은 전쟁터 한복판에서 폭력과 굴욕,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침묵과 낙인, 외면 속에 살아야 했다.한반도의 위안부—국민국가의 상징이 된 고통한국(조선)에서 동원된 위안부 피해 여성은 최소 수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이들은 ‘직업’이나 ‘군수공장 근로자 모집’ 등 명분 아래 가난한 농촌, 도시 하..

History 2025.07.28

일본 제국의 그림자, 만주국 그리고 조선인·대만인의 선택

이민자의 제국, 그 속의 엘리트들1932년, 일본은 중국 동북부 만주(滿洲) 지역에 괴뢰국 ‘만주국(滿洲國, Manchukuo)’을 세운다.표면적으로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집권하는 ‘독립국’이었지만, 실상은 일본 관동군이 모든 권력을 쥔 제국주의 실험장이었다.이 만주국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조선인과 대만인 엘리트들이, 누군가는 관리로, 누군가는 경찰·경비대로 일본의 질서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만주국 건국—제국의 설계도 위에 지어진 ‘이상국’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만주사기 사건)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고, 이듬해 만주국을 수립했다.일본이 내세운 명분은 ‘오족협화’(일본·만주족·한족·몽골족·조선족이 평등하게 사는 새로운 국가)였다.그러나 실상은 일본 관동군이 경제, 치안, 군사, 교육..

카테고리 없음 2025.07.28

조선 말 왕실, 암투와 피의 밤

청일전쟁 전후, 개화파의 몰락과 외세의 각축19세기 말, 조선 왕실은 전대미문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내부적으로는 왕권, 왕비, 세도가, 개화파, 보수파가 끊임없이 권력을 두고 싸웠고, 외부로는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거대한 외세가 조선의 운명을 두고 맞붙었다.이 불안정한 시기는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라는 비극, 그리고 개화파의 몰락과 대한제국 탄생으로 이어진다. 개화파의 부상과 갈등의 심화개화파는 1880년대 이후 등장한 신진 관료와 젊은 지식인 그룹이다. 이들은 구시대의 벽을 넘고 근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파 인사들은 일본과 미국, 청나라 등지를 여행하며 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았다.1884년 갑신정변(개화파의 일본 지원 쿠데타) 실패 이후, 많은 이들이 유배,..

카테고리 없음 2025.07.28

두 개의 대만, 하나의 섬

본성인과 외성인—역사가 만든 갈등, 그리고 화해의 길오늘날 대만(타이완)을 떠올리면, 첨단 IT, 활기찬 민주주의, 다양하고 열린 사회가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그 겉모습 아래에는 깊은 역사적 갈등과 상처가 흐르고 있다. 바로 ‘본성인(本省人, benshengren)’과 ‘외성인(外省人, waishengren)’의 문제다. 두 집단의 기원—본성인과 외성인본성인이란, 대만에 수백 년 전부터 정착해 살아온 한족(주로 푸젠, 광둥 출신)과 대만 원주민 후손을 포함한다. 17세기 이후, 명·청 시대를 거치며 대만에 정착한 이들은 일본 식민지(1895~1945)를 함께 경험했고, 일본어·일본식 교육·문화에도 깊이 노출됐다.외성인은 1945년 이후, 특히 1949년 중국 내전(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하며 대만으로..

History 2025.07.27

식민지 경성, 두 세계가 부딪힌 도시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회와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갈등과 교류1920~30년대 경성(현 서울)은 두 세계가 겹쳐 살아 숨 쉬는 도시였다. 한편에는 일본인 관료, 기업인, 군인, 그리고 가족들로 이뤄진 식민지 권력자들의 사회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억압받는 조선인,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키던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이 있었다. 일본인 사회—식민 지배의 일상과 특권한반도에 정착한 일본인 사회는 191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했다. 1930년대엔 경성 인구의 약 15%가 일본인이었고, 평양, 부산, 신의주 등 각지에도 일본인 거주지가 따로 조성됐다.경성 중심가엔 일본인 전용 학교, 신사(神社), 백화점, 우체국, 전차, 병원 등 최신 시설이 들어섰다.이들은 조선인보다 더 좋은 주거지, 급여, 치안..

History 2025.07.27

그림자 속의 제국

홍방(洪幇), 삼합회, 그리고 동아시아 범죄 네트워크의 역사오늘날 ‘마피아’ 하면 이탈리아를 떠올리지만, 동아시아에도 오랜 전통의 거대 범죄조직들이 있다. 중국의 ‘홍방(洪幇)’과 ‘삼합회(三合會, Triad)’는 단순한 깡패 집단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 암암리에 동아시아 전역을 연결한 ‘그림자 제국’이었다. 비밀결사로 출발한 ‘홍방’과 삼합회홍방(洪幇, Hongmen), 혹은 삼합회는 17~18세기 청나라 때 등장한 비밀결사(Secret Society)에서 시작되었다.초기의 목적은 ‘의(義)’를 추구하는 민간 자치와, 만주족이 세운 청 왕조에 맞서는 ‘반청복명(反淸復明)’ 운동이었다.사형제(四兄弟) 의식을 치르고조직원 간 철저한 비밀유지,상호 지원과 보호,의리와 복수를 강조이런 면..

History 2025.07.27

조선에 부는 ‘서학’의 바람

가장 먼저 가톨릭을 받아들인 나라, 그리고 피의 박해한국에서 ‘종교의 자유’는 오늘날 자명해 보이지만,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일은 한때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조선 후기, 서양에서 온 새로운 학문과 종교, ‘서학(西學, Catholicism)’이 조선 지식인과 백성들에게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은 씨앗은 곧 거대한 박해와 순교의 역사로 이어진다. 서학, 조선을 만나다18세기 후반, 조선은 오랜 성리학 질서와 봉건적 신분제가 지배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청나라와의 연행(燕行) 등을 통해 서양의 새로운 학문과 문물이 유입되었고, 그 중심에 ‘천주학’(Catholicism, 가톨릭)이 있었다.조선의 최초 가톨릭 수용은 독특했다. 서양 선교사가 본격적으로 전도하기 전에, 조선의 유학자들이 스스로 ‘천..

History 2025.07.26

침묵의 섬, 분노의 기억

대만 228사건의 진실과 그 후유증, 그리고 현대 정치사오늘날 대만(타이완)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를 자랑한다. 그러나 불과 몇 세대 전, 이 섬은 오랜 시간 ‘공포’와 ‘침묵’이 지배하던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228사건(二二八事件, February 28 Incident)’이라는 대만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식민지에서 국민당의 통치로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자, 50년 가까이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있었던 대만은 중국 국민당(國民黨, KMT) 정부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대만 사람들은 곧 국민당의 부패, 경제 혼란, 정치적 억압에 시달리게 된다.본토에서 온 국민당 관료들은 대만인(本省人, 본성인)을 ‘..

카테고리 없음 2025.07.26

머리카락에 깃든 저항의 역사

청나라 변발령(辮髮令)과 한족 사회의 항쟁중국의 긴 역사에서 머리 모양이 이토록 큰 정치적 의미를 띤 적이 또 있었을까?17세기 초, 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이 중원을 정복하고 청나라(淸朝)를 세운 이후, 중국 땅에는 전례 없는 ‘머리카락 전쟁’이 시작됐다.그 중심에 바로 “변발령(辮髮令, 변발 강제령)”이 있었다. 변발령이란 무엇인가?변발(辮髮)이란 만주족 남성의 전통 머리 모양이다. 앞머리는 깨끗이 밀고, 뒷머리는 길게 땋아서 등 뒤로 늘어뜨리는 형태다.1644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북경에 입성하자, 새 왕조는 한족(漢族)에게도 만주족과 같은 머리 모양을 강제하는 ‘변발령’을 내린다.“머리는 남기고(留頭), 변발하라(辮髮)”는 이 명령은 단순한 헤어스타일 강요가 아니라, ‘왕조에의 복종’과 ..

History 2025.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