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두 개의 대만, 하나의 섬

리버의역사 2025. 7. 27. 12:40

본성인과 외성인—역사가 만든 갈등, 그리고 화해의 길

오늘날 대만(타이완)을 떠올리면, 첨단 IT, 활기찬 민주주의, 다양하고 열린 사회가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그 겉모습 아래에는 깊은 역사적 갈등과 상처가 흐르고 있다. 바로 ‘본성인(本省人, benshengren)’과 ‘외성인(外省人, waishengren)’의 문제다.

1980년대 대만 시위에서 본성인과 외성인 갈등이 드러나는 모습

 

두 집단의 기원—본성인과 외성인

본성인이란, 대만에 수백 년 전부터 정착해 살아온 한족(주로 푸젠, 광둥 출신)과 대만 원주민 후손을 포함한다. 17세기 이후, 명·청 시대를 거치며 대만에 정착한 이들은 일본 식민지(1895~1945)를 함께 경험했고, 일본어·일본식 교육·문화에도 깊이 노출됐다.

외성인은 1945년 이후, 특히 1949년 중국 내전(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하며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 본토 출신을 가리킨다. 장제스와 국민당 정부, 수십만의 군인·관료·지식인·가족 등 약 150~200만 명이 대만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본토의 관료적 습관, 북방 방언, 본토 문화를 고스란히 대만에 가져왔다.

 

국민당 정부와 사회의 분할

1945년 일본 패망 뒤 대만은 국민당(중화민국) 정부의 통치를 받게 된다.
초기엔 해방의 기쁨도 있었지만, 곧 국민당의 부패·무능·폭정이 대만 사회 전역에 불만을 키웠다. 1947년 2·28사건에서 국민당 정부는 본성인 지식인·시민을 대량 학살하며 강압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1949년 이후 본토 패망 후 유입된 외성인들은 행정, 군사, 교육 등 권력의 거의 모든 영역을 독점했다.

  • 본성인들은 사회 곳곳에서 차별을 경험했고, 공직·고급 교육·경제권에서 밀려났다.
  • 외성인들은 언어(관화, 만다린), 문화, 정치 시스템을 본토 방식으로 강제 이식했다.

이 과정에서 대만 사회는 언어, 문화, 지역, 정치, 심지어 일상생활까지 양분되었다.

 

일상 속의 벽—언어와 기억의 단절

  • 학교와 공공기관, 방송은 표준중국어(만다린)를 강제했고, 본성인들의 민남어(대만어), 객가어, 일본어 사용은 금지되거나 천시되었다.
  • 외성인 출신은 아파트, 고급 관사 등 ‘특권 사회’에 살며, 본성인 다수는 소외되고 차별받는 현실을 견뎌야 했다.
  • 가족·결혼·네트워크도 본성인/외성인 사이에 나뉘었고, 섞이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민주화와 기억의 대립—정체성의 싸움

1980년대 이후 민주화·자유화가 진전되면서, 본성인들은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1987년 계엄령 해제 이후, 본성인 출신 정치세력이 성장했고, 민진당(민주진보당) 등 본성인 기반 정당이 등장했다.
  • 과거 2·28사건, 백색테러 피해자에 대한 재평가와 진상규명, 보상, 사과가 이루어졌다.
  • 대만어, 대만 역사 교육, 본성인 문화의 부흥도 함께 이루어졌다.

하지만 외성인 집단은 여전히 “국민당=중화민국=본토 정통성”을 강조하며, 대만의 독립 움직임에 반감을 가졌다.
정치적으로도 국민당(외성인 지지)과 민진당(본성인 지지)의 대립은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대만—갈등, 그리고 화해의 시작

21세기 들어, 대만 사회는 점차 ‘본성인/외성인’ 이분법을 넘어 다양성과 통합, ‘대만인’ 정체성으로 변화하고 있다.

  • 대만에서 태어난 외성인 2~3세는 스스로를 ‘대만인’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고,
  • 혼혈·혼인·언어·문화의 융합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 그러나 여전히 역사적 기억, 선거철의 지역·정치 대립 등 ‘옛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결론—같은 섬, 다른 기억, 하나의 미래

대만의 본성인-외성인 갈등사는 단순히 한 사회의 아픈 과거가 아니다.
정체성, 언어, 역사, 권력, 기억이 어떻게 사회를 나누고, 다시 하나로 만들어가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다.
오늘 대만의 민주주의와 다양성, 그 아래 잠들지 않은 갈등의 기억은, 동아시아 전체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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