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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상처

중일전쟁 시기 ‘위안부’ 피해 여성, 한국·중국·대만의 기억과 현실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으로 남는다. 하지만 전쟁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에는 ‘말할 수 없는 패자’의 상처가 깊이 새겨져 있다.1937년 중일전쟁(이듬해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본군은 점령지 곳곳에 ‘군 위안소(慰安所)’를 설치하고, 한국·중국·대만 등지의 수십만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이 피해자들은 전쟁터 한복판에서 폭력과 굴욕,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침묵과 낙인, 외면 속에 살아야 했다.한반도의 위안부—국민국가의 상징이 된 고통한국(조선)에서 동원된 위안부 피해 여성은 최소 수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이들은 ‘직업’이나 ‘군수공장 근로자 모집’ 등 명분 아래 가난한 농촌, 도시 하..

History 2025.07.28

일본 제국의 그림자, 만주국 그리고 조선인·대만인의 선택

이민자의 제국, 그 속의 엘리트들1932년, 일본은 중국 동북부 만주(滿洲) 지역에 괴뢰국 ‘만주국(滿洲國, Manchukuo)’을 세운다.표면적으로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집권하는 ‘독립국’이었지만, 실상은 일본 관동군이 모든 권력을 쥔 제국주의 실험장이었다.이 만주국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조선인과 대만인 엘리트들이, 누군가는 관리로, 누군가는 경찰·경비대로 일본의 질서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만주국 건국—제국의 설계도 위에 지어진 ‘이상국’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만주사기 사건)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고, 이듬해 만주국을 수립했다.일본이 내세운 명분은 ‘오족협화’(일본·만주족·한족·몽골족·조선족이 평등하게 사는 새로운 국가)였다.그러나 실상은 일본 관동군이 경제, 치안, 군사, 교육..

카테고리 없음 2025.07.28

조선 말 왕실, 암투와 피의 밤

청일전쟁 전후, 개화파의 몰락과 외세의 각축19세기 말, 조선 왕실은 전대미문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내부적으로는 왕권, 왕비, 세도가, 개화파, 보수파가 끊임없이 권력을 두고 싸웠고, 외부로는 청나라와 일본이라는 거대한 외세가 조선의 운명을 두고 맞붙었다.이 불안정한 시기는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라는 비극, 그리고 개화파의 몰락과 대한제국 탄생으로 이어진다. 개화파의 부상과 갈등의 심화개화파는 1880년대 이후 등장한 신진 관료와 젊은 지식인 그룹이다. 이들은 구시대의 벽을 넘고 근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파 인사들은 일본과 미국, 청나라 등지를 여행하며 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았다.1884년 갑신정변(개화파의 일본 지원 쿠데타) 실패 이후, 많은 이들이 유배,..

카테고리 없음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