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 25

두 개의 대만, 하나의 섬

본성인과 외성인—역사가 만든 갈등, 그리고 화해의 길오늘날 대만(타이완)을 떠올리면, 첨단 IT, 활기찬 민주주의, 다양하고 열린 사회가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그 겉모습 아래에는 깊은 역사적 갈등과 상처가 흐르고 있다. 바로 ‘본성인(本省人, benshengren)’과 ‘외성인(外省人, waishengren)’의 문제다. 두 집단의 기원—본성인과 외성인본성인이란, 대만에 수백 년 전부터 정착해 살아온 한족(주로 푸젠, 광둥 출신)과 대만 원주민 후손을 포함한다. 17세기 이후, 명·청 시대를 거치며 대만에 정착한 이들은 일본 식민지(1895~1945)를 함께 경험했고, 일본어·일본식 교육·문화에도 깊이 노출됐다.외성인은 1945년 이후, 특히 1949년 중국 내전(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하며 대만으로..

History 2025.07.27

식민지 경성, 두 세계가 부딪힌 도시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회와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갈등과 교류1920~30년대 경성(현 서울)은 두 세계가 겹쳐 살아 숨 쉬는 도시였다. 한편에는 일본인 관료, 기업인, 군인, 그리고 가족들로 이뤄진 식민지 권력자들의 사회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억압받는 조선인,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키던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이 있었다. 일본인 사회—식민 지배의 일상과 특권한반도에 정착한 일본인 사회는 191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했다. 1930년대엔 경성 인구의 약 15%가 일본인이었고, 평양, 부산, 신의주 등 각지에도 일본인 거주지가 따로 조성됐다.경성 중심가엔 일본인 전용 학교, 신사(神社), 백화점, 우체국, 전차, 병원 등 최신 시설이 들어섰다.이들은 조선인보다 더 좋은 주거지, 급여, 치안..

History 2025.07.27

그림자 속의 제국

홍방(洪幇), 삼합회, 그리고 동아시아 범죄 네트워크의 역사오늘날 ‘마피아’ 하면 이탈리아를 떠올리지만, 동아시아에도 오랜 전통의 거대 범죄조직들이 있다. 중국의 ‘홍방(洪幇)’과 ‘삼합회(三合會, Triad)’는 단순한 깡패 집단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 암암리에 동아시아 전역을 연결한 ‘그림자 제국’이었다. 비밀결사로 출발한 ‘홍방’과 삼합회홍방(洪幇, Hongmen), 혹은 삼합회는 17~18세기 청나라 때 등장한 비밀결사(Secret Society)에서 시작되었다.초기의 목적은 ‘의(義)’를 추구하는 민간 자치와, 만주족이 세운 청 왕조에 맞서는 ‘반청복명(反淸復明)’ 운동이었다.사형제(四兄弟) 의식을 치르고조직원 간 철저한 비밀유지,상호 지원과 보호,의리와 복수를 강조이런 면..

History 2025.07.27

조선에 부는 ‘서학’의 바람

가장 먼저 가톨릭을 받아들인 나라, 그리고 피의 박해한국에서 ‘종교의 자유’는 오늘날 자명해 보이지만,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일은 한때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조선 후기, 서양에서 온 새로운 학문과 종교, ‘서학(西學, Catholicism)’이 조선 지식인과 백성들에게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은 씨앗은 곧 거대한 박해와 순교의 역사로 이어진다. 서학, 조선을 만나다18세기 후반, 조선은 오랜 성리학 질서와 봉건적 신분제가 지배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청나라와의 연행(燕行) 등을 통해 서양의 새로운 학문과 문물이 유입되었고, 그 중심에 ‘천주학’(Catholicism, 가톨릭)이 있었다.조선의 최초 가톨릭 수용은 독특했다. 서양 선교사가 본격적으로 전도하기 전에, 조선의 유학자들이 스스로 ‘천..

History 2025.07.26

침묵의 섬, 분노의 기억

대만 228사건의 진실과 그 후유증, 그리고 현대 정치사오늘날 대만(타이완)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를 자랑한다. 그러나 불과 몇 세대 전, 이 섬은 오랜 시간 ‘공포’와 ‘침묵’이 지배하던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228사건(二二八事件, February 28 Incident)’이라는 대만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식민지에서 국민당의 통치로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하자, 50년 가까이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있었던 대만은 중국 국민당(國民黨, KMT) 정부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대만 사람들은 곧 국민당의 부패, 경제 혼란, 정치적 억압에 시달리게 된다.본토에서 온 국민당 관료들은 대만인(本省人, 본성인)을 ‘..

카테고리 없음 2025.07.26

머리카락에 깃든 저항의 역사

청나라 변발령(辮髮令)과 한족 사회의 항쟁중국의 긴 역사에서 머리 모양이 이토록 큰 정치적 의미를 띤 적이 또 있었을까?17세기 초, 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이 중원을 정복하고 청나라(淸朝)를 세운 이후, 중국 땅에는 전례 없는 ‘머리카락 전쟁’이 시작됐다.그 중심에 바로 “변발령(辮髮令, 변발 강제령)”이 있었다. 변발령이란 무엇인가?변발(辮髮)이란 만주족 남성의 전통 머리 모양이다. 앞머리는 깨끗이 밀고, 뒷머리는 길게 땋아서 등 뒤로 늘어뜨리는 형태다.1644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북경에 입성하자, 새 왕조는 한족(漢族)에게도 만주족과 같은 머리 모양을 강제하는 ‘변발령’을 내린다.“머리는 남기고(留頭), 변발하라(辮髮)”는 이 명령은 단순한 헤어스타일 강요가 아니라, ‘왕조에의 복종’과 ..

History 2025.07.26

사라져가는 목소리, 되살아나는 이름

북해도의 아이누족과 일본화(일본同化) 정책의 그림자일본 최북단, 광활한 평야와 빙설이 어우러진 섬—홋카이도(北海道). 이곳엔 오래전부터 ‘일본인’이 아닌, ‘아이누(Ainu)’라는 또 다른 주인이 살고 있었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아이누는 수천 년 동안 홋카이도와 사할린, 쿠릴 열도의 대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 신앙, 문화를 꽃피워왔다. 아이누족—바다와 숲의 민족아이누는 언어적, 인류학적으로도 일본 주류인 야마토민족(大和民族)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집단이다. 아이누어는 일본어와도, 유라시아 다른 언어와도 계통이 다르다.이들은 사냥, 어업, 채집, 소규모 농경에 의존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 곰신(イヨマンテ), 불의 신, 숲과 바다의 영혼을 모시는 ‘..

카테고리 없음 2025.07.26

변방의 주인이 바꾼 동아시아의 지도

요·금·서하 소수민족 왕조와 고려, 송, 원의 복잡한 권력 구도동아시아의 중세사는 ‘중원(中原)의 한족 왕조가 중심’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로 10~13세기, 동아시아를 이끌었던 주역들은 오히려 변방의 소수민족 왕조들이었다. 그 대표가 바로 **요(契丹), 금(女眞), 서하(西夏)**다. 이들 왕조의 부상은 고려, 송, 원 등 전통 강국의 운명을 뒤흔들며 동아시아의 지도를 완전히 새롭게 그렸다. 1. 요(契丹) – 유목의 제국이 중원을 지배하다10세기 초, 만주와 몽골 초원을 무대로 하던 거친 유목민족 ‘거란(契丹)’이 한족의 혼란을 틈타 요(遼) 왕국을 세운다. 요나라는 만주, 몽골, 중국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한족 송(宋) 왕조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했다.이 시기 송은 군..

History 2025.07.26

국경을 넘어 평화를 잇다

조선 통신사와 일본 에도 막부의 문화 교류와 그 유산오늘날 한·일 관계는 역사와 현실의 파고를 넘나들지만, 과거에는 양국 사이에 평화와 문화를 잇는 ‘대사절단’이 수차례 오가며 진귀한 교류의 시대가 있었다. 이 주인공이 바로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다.통신사란 문자 그대로 “소식을 통한다”는 의미. 하지만 실제 그 역할은 외교·평화 사절, 문화 전파자, 지식 교류의 중개인이었다. 왜 통신사가 등장했을까?16세기 말, 임진왜란(1592~1598)이라는 비극 이후 조선과 일본은 국교가 단절됐다. 그러나 에도 막부가 안정되고 일본이 대외 무역과 외교를 재개하며, 두 나라 사이에 외교 관계가 복원된다. 그 상징적 사건이 바로 ‘조선 통신사’의 파견이다.1607년을 시작으로 1811년까지 약 200년간, 공식적으..

History 2025.07.25

바다 위 작은 왕국, 동아시아를 잇다

류큐왕국과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 오키나와오키나와라 하면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해변, 일본 최남단의 남국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과거 수백 년 동안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의 중심지이자, 독립된 왕국 ‘류큐왕국(琉球王国)’의 땅이었다.이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중국, 일본, 조선, 대만을 잇는 무역의 교차로가 되었을까? 류큐왕국의 탄생과 성장류큐왕국은 15세기 초, 오키나와를 비롯한 주변 섬들이 통일되며 시작됐다. ‘쇼하시(尚巴志)’ 왕이 중산·북산·남산 등 세 왕국을 통합하고 슈리(首里)에 왕국을 세우면서 류큐왕국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류큐는 지리적으로 동중국해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고, 중국·일본·조선·대만·동남아를 잇는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해상 무역왕국, 류큐의 황금기15세기..

History 2025.07.25